한영호(韓永浩, 1894~1950)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 11월 1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지석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경삼(景三)이다. 그는 1919년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의 흐름 속에서 함안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1919년 3월 20일, 한영호는 함안군 군북면 시장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군북면의 시위는 인근 지역 주민 수천 명이 집결하여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는 조상규(趙相圭), 조용효(趙容孝) 등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고, 시위대와 함께 군북 경찰관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 강력히 저항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에 이르자 일본 경찰과 헌병들은 무력 진압을 시도하였다. 일제 군경은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영호는 일경이 쏜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순국자와 부상자가 발생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 사건은 함안 지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항쟁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부상 이후에도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광복 이후 고향에서 지내다 1950년 5월 26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영호의 활동은 지역 사회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을 뿐만 아니라, 영남 지역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