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7세는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잉글랜드의 왕으로 재위한 인물이다. 그는 튜더 왕조의 창립자로, 잉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인리히 7세는 랭커스터 가문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즉위는 잉글랜드 내전인 장미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다. 그는 보통 전쟁의 영웅이자 국왕으로 여겨지며, 정치적으로 안정된 왕국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하인리히 7세의 즉위는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무찌르면서 이루어졌다. 이 전투는 장미 전쟁의 결정적인 전투로 여겨지며, 하인리히는 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의 즉위는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고, 다양한 사회 계층을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인리히 7세는 자국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수립하고, 귀족들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데 노력했다.
그의 통치하에 경제가 회복되고 발전하였으며, 상업과 무역이 활성화되었다. 특히, 하인리히 7세는 자국의 상공업을 장려하고 해외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상업 조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잉글랜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궁극적으로는 왕권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하인리히 7세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왕실 재정을 안정화시키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하인리히 7세의 정책 중 하나인 국제 혼인은 그의 외교 전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여러 유럽 왕국의 왕족과 혼인시키고, 이를 통해 잉글랜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 했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은 후에 그의 아들 하인리히 8세의 통치 시기에 더욱 확대되었다. 하인리히 7세는 1509년에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인 통치를 유지했으며, 그의 아래에서 잉글랜드는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는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