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누스 3세(피피누스 III, Pippin III)는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카롤링거 왕조의 창시자로, 751년부터 768년까지 재위하였다. 그는 피피누스 2세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메로빙거 왕조의 군주에 의해 명목상의 왕이었던 시기를 거친 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러 정치적 전략을 구사하였다. 피피누스 3세는 특히 교회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높였다.
그의 통치 초기에는 메로빙거 왕조의 왕, 즉 메로빙거 왕국의 왕인 클로비스의 후손들을 제치고 사실상의 권력을 얻기 위해 여러 전투를 치렀다. 751년에 그는 파리에서 왕으로 즉위하면서 메로빙거 왕조의 실질적인 종말을 알렸다. 그 후, 교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교회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성직자들과의 동맹을 통해 자신의 통치 기반을 넓혔다. 또한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더욱 높였다.
피피누스 3세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프랑크 왕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중앙 집중적인 정부를 구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군사 작전을 통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일부 지역을 정복하고, 동부의 바바리안 부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프랑크 왕국의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전쟁은 그의 통치 아래에서 이루어진 군사적 성과 중 일부로, 그의 아들 카를로스 대제의 통치로 이어지는 기초를 다졌다.
그의 죽음 이후, 피피누스 3세의 아들들은 왕국을 물려받아 카롤링거 왕조를 이어갔다. 특히 카를로스 대제는 피피누스의 업적을 바탕으로 제국의 형태를 강화하고, 유럽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피피누스 3세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강력한 국가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프랑크 왕국이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