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어 화이트(Poor Whites)는 주로 미국 남부의 노예제 시기부터 남북전쟁 이후까지 존재했던 가난한 백인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당시 남부 사회의 지배층이었던 대농장주(Planter)와 대비되는 집단으로, 토지나 노예를 소유하지 못한 채 열악한 경제적 환경에서 생활했다. 이들은 백인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을 공유했으나, 자본과 생산 수단으로부터 소외되어 사회적, 경제적 하층민을 형성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푸어 화이트는 주로 소작농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노예 노동이 농업 경제의 중심이었던 남부에서 이들은 노예와 노동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모순된 위치에 처해 있었다. 노예제는 이들의 임금을 낮추고 경제적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스템 내에서 가장 낮은 지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분투했다. 이러한 경제적 빈곤은 교육 기회의 결여와 영양 부족 등으로 이어져 세대 간 빈곤의 대물림을 낳았다.
사회 구조적으로 푸어 화이트는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흑인 노예와 다를 바 없거나 때로는 더 궁핍한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인종주의적 계급 구조 덕분에 상징적인 우월감을 누릴 수 있었다. 남부의 엘리트 지배층은 푸어 화이트들이 흑인들과 연대하여 기득권에 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종적 우월 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로 인해 푸어 화이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지지하고 백인 우월주의 정책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가 폐지되자 푸어 화이트의 입지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해방된 흑인들과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되면서 이들 사이의 인종적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는 훗날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과 같은 인종 차별 법안이 제정되고 KKK와 같은 극단적인 인종주의 단체가 활성화되는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지배층은 이들의 불만을 인종 문제로 돌림으로써 계급 간의 결집보다는 인종 간의 대립을 유도했다.
현대에 이르러 푸어 화이트라는 용어는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힐빌리(Hillbilly)', '레드넥(Redneck)' 등과 같은 비하적인 표현과 결부되기도 한다. 이러한 명칭들은 이들을 게으르고 무지하며 타협하기 어려운 집단으로 타자화하는 낙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과학적 논의에서는 이들을 단순한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와 인종 정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소외된 계층으로 재조명하며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