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리스는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중앙 아시아의 스키타이(Scythian) 유목민 부족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스키타이의 동부 지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토미리스는 특히 그녀의 적인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왕과의 전투를 통해 역사에 남게 되었다. 키루스는 스키타이를 정복하고자 했으나 토미리스의 지도 하에 그녀의 군대와 맞서게 된다.
토미리스는 그녀의 군사적 지휘 아래에서 스키타이 전사들을 조직하고 훈련시켰다. 그녀는 유목민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기에 불구하고 남성들과 동등한 전투 능력을 갖춘 전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토미리스는 전투에서의 용감함과 전략적 사고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는 그녀의 전쟁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토미리스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그녀가 키루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건이다. 기록에 따르면, 키루스는 토미리스의 아들인 스키타이 왕자를 포로로 잡아 그녀에게 협상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토미리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전투를 결심했다. 이후 토미리스는 전략적으로 전투를 이끌어 결국 키루스의 군대를 패배시켰고, 처형된 키루스의 시신을 전란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토미리스는 이후에도 그녀의 지배력을 유지하며 스키타이 부족의 통합과 방어에 힘썼다.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스키타이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고, 이는 주변 민족들에게도 두려움을 주었다. 토미리스는 역사의 여왕으로서 강력한 리더십과 전투 능력을 발휘하여, 중앙 아시아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전해지며 여성의 강력한 지도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