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그리데 알프 퀼뤽 빌게 카간

텡그리데 알프 퀼뤽 빌게 카간(Tengride Alp Külüğ Bilge Kagan)은 위구르 제국의 제8대 카간으로, 재위 기간은 808년부터 821년까지이다. 당나라 측 기록에서는 보의가한(保義可汗)이라는 칭호로 주로 등장한다. 그는 전임 카간인 아이 텡그리데 쿠트 볼미시 알프 퀼뤽 빌게 카간의 아들로서 부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위구르 제국의 국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를 통치한 군주 중 한 명이다.

그의 통치기에 위구르 제국은 당나라와 복잡하면서도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즉위 초기부터 당나라에 사절을 보내 혼인 동맹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당나라는 위구르의 요구에 부담을 느껴 한동안 확답을 피했으나, 지속적인 외교적 압박 끝에 821년 헌종의 딸인 태화공주(太和公主)와의 혼인을 허락하였다. 이러한 화번공주와의 혼인은 위구르 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당나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군사적으로는 제국의 영토를 수호하고 주변 민족들을 압박하는 데 주력하였다. 특히 북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예니세이 키르기스족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으며, 서쪽으로는 토번(티베트)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전선에서 군사적 대립을 지속하였다. 그는 강력한 기병 군단과 소그드인 상인들의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제국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였으며,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종교 및 문화적으로는 마니교를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당시 위구르 제국 내에서 마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통치 이념과 국가 조직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카라발가순 비문'은 돌궐 문자(위구르 문자), 소그드 문자,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대 위구르 제국의 다문화적 특성과 카간의 강력한 권위를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다.

텡그리데 알프 퀼뤽 빌게 카간은 821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텡그리데 쿠트 볼미시 퀴칠리그 빌게 카간(충덕가한)이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 기간은 위구르 제국이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힘을 투사하며 중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이후 위구르 제국은 점차 내부 분열과 자연재해, 그리고 키르기스족의 반격에 직면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