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피스트리는 다채로운 선염색사(先染色絲)를 사용하여 그림이나 문양을 짜 넣은 직물 공예의 일종이다.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이 기법은 주로 씨실(가로실)이 날실(세로실)을 완전히 덮어 은폐하면서 표면에 문양을 형성하는 평직의 변형된 형태를 띤다. 벽걸이 장식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섬유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역사적으로 태피스트리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페르시아 등지에서 이미 제작되었으나, 유럽에서는 중세 말기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프랑스의 아라스와 벨기에의 브뤼셀은 세계적인 태피스트리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초기에는 성서의 내용이나 신화를 주제로 삼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냥, 궁정 생활, 역사적 사건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태피스트리는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사회적, 실용적 가치를 지녔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들은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태피스트리를 주문 제작하여 성 내부를 장식했다. 또한, 거대한 석조 성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를 차단하고 내부의 온기를 보존하는 단열재의 역할을 수행했다. 돌돌 말아서 운반하기 용이했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들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이동형 예술품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제작 과정은 고도의 숙련도와 인내를 요구한다. 화가가 실물 크기로 그린 밑그림인 '카르통(Carton)'을 바탕으로 직조사가 베틀에 앉아 한 땀 한 땀 짜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직 베틀인 하이워프(High-warp)와 수평 베틀인 로우워프(Low-warp)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주재료로는 양모가 쓰였으나, 광택과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실크나 금사, 은사를 혼용하기도 했다.
근대에 이르러 기계 직조의 발달로 수공예 태피스트리는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으나, 20세기 들어 장 뤼르사(Jean Lurçat) 등의 예술가들에 의해 현대적 예술 양식으로 재탄생했다. 오늘날의 태피스트리는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추상적인 표현과 다양한 신소재를 결합하여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