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崔治遠, 857년 ~ 935년)은 통일신라 말기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정치가, 유학자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경주(景周), 호는 구천(九川) 또는 세겸(世謙)이다. 최치원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사상가로서 그의 저작과 사상은 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치원은 시와 글 모두에 뛰어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고, 특히 한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계원필경(桂苑筆耕)', '제왕운기(帝王韻記)', '토황소군서(討黃巢軍書)' 등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역사와 정치,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신라 말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성리학과 유교적 가치관을 통해 정치와 사회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또한, 최치원은 외교적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당나라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외교 활동은 당시 고려와 중국 간의 상호 작용을 증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최치원의 사상은 특히 후대의 고려와 조선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유교적 가치관과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정신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고, 정통한 유학자의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최치원은 생애 동안 여러 정치적ㆍ사회적 활동을 통해 문학과 사상, 외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업적을 남겼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사상과 저작은 한국 문학과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최치원의 업적은 이후의 문인과 정치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이름은 한국 역사와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