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술(崔龍述, 1892년 3월 24일 ~ 1950년 11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정치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한국 정치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용술은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뚜렷한 학습 능력을 바탕으로 일찍이 교육에 힘썼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후 상해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는 한국 독립협회와 같은 독립운동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특히 학교 교육을 통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독립운동을 이끌기 위해 힘썼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그는 한국의 정치적 재편 과정에 참여하였고, 이후 한국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최용술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정권에 의해 체포되었고, 1950년 11월 5일 사망하였다. 그의 삶과 활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