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풍사건(銃風事件)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 관련자들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휴전선 인근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했던 사건이다. '총풍'이라는 명칭은 북한군이 총격을 가해 안보 위기감을 조성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 사건은 국가 안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 대표적인 북풍(北風) 공작 사례로 꼽힌다.
사건의 핵심 인물은 전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 대북 사업가 한성기, 장석중 등 3인이다. 이들은 선거를 며칠 앞둔 1997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대남 공작 조직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판문점 내에서 총격 시위를 벌여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자, 보수 표심을 결집하고 유권자들에게 안보 불안을 심어주어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들의 모의는 실제 무력 충돌로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통해 전말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북한 측에 구체적인 날짜와 방법까지 제시하며 도발을 사주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관련자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사법 처리를 받게 되었다.
2003년 대법원은 오정은 등 주도 인물들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가 국가의 안녕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다만, 이회창 후보나 한나라당 수뇌부가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
총풍 사건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 반국가적 행위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던 북풍 공작에 대한 대중적 경계심이 강화되었으며,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과 선거 개입 금지를 명문화하는 등 민주적 통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