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애왕

초애왕(楚哀王)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제41대 군주로, 성은 미(羋), 씨는 웅(熊), 이름은 유(猶)이다. 고열왕(考烈王)의 아들이자 유왕(幽王)의 동생이다. 기원전 228년 형인 유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초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아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애왕의 즉위 과정은 당시 초나라 왕실 내의 복잡한 권력 투쟁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조정의 실권자였던 외숙부 이원(李園)은 유왕의 서거 이후 애왕을 옹립하여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다른 왕실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서형(庶兄)이었던 부추(負芻) 세력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애왕은 즉위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서형 부추를 따르는 무리가 정변을 일으켜 애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애왕의 어머니인 태후와 외숙부 이원을 비롯한 애왕 지지 세력들이 대거 숙청당했으며, 이로 인해 초나라 왕실은 심각한 내홍에 휩싸이게 되었다.

초애왕의 짧은 치세와 죽음은 초나라 멸망의 결정적인 징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왕실 내부의 유혈 사태와 권력 다툼으로 인해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이는 진나라의 통일 전쟁에 대응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애왕을 죽이고 즉위한 부추 역시 진나라의 대규모 침공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결국 기원전 223년 초나라는 진나라 장수 왕전(王翦)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