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선(蔡奉宣, 1908~1974)은 한국 근대 서양 음악사의 기틀을 마련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음악 교육자이다. 평안남도 안주 출생인 그는 일찍이 음악에 입문하여 일본 도쿄 음악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바이올린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슈테른 음악원에서 수학하며 정통 유럽 음악의 체계와 연주법을 익혔다. 이는 당시 한국 음악계에서 매우 드문 선구적인 경력이었으며, 훗날 그가 국내 음악계의 지도적 인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귀국 후 채봉선은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독주회와 실내악 공연을 통해 활발한 연주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서양 고전 음악의 정수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바이올린 연주의 기술적, 예술적 수준을 고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정확한 기교와 깊이 있는 해석을 중시하는 그의 연주 스타일은 당시 한국 음악가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 클래식 음악 환경에 전문적인 연주 규범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휘자로서 채봉선은 한국 교향악단의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고려교향악단의 창설에 참여하고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며 한국 교향악 운동의 효시를 이루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 등 서양 고전파와 낭만파의 주요 교향곡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한국 관현악의 기틀을 다졌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한 국내 주요 교향악단들이 발전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교육 분야에서도 그는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한국 음악 교육 시스템의 체계화와 현대화에 힘썼다. 그는 연주 기술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 갖춰야 할 학구적인 태도와 인격 형성을 강조하였다. 그가 배출한 제자들은 이후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중추적인 인물들로 성장하여 오늘날 한국 음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채봉선은 작곡가 채동선 등과 더불어 한국 음악사의 여명기를 이끈 선구자로 기억된다. 그의 가문 또한 성악가 채리숙 등 걸출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7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을 한국 음악의 전문화와 발전을 위해 헌신한 그의 생애는 한국 서양 음악 수용사와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