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랑호 납북 사건은 1970년대 초반 북한의 해상 침투와 관련된 사건으로, 1970년 4월 15일 대한민국의 창랑호가 북한 해역에서 피랍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남북 관계의 긴장된 상황과 맞물려 발생했으며, 이후 북한의 납치 사건을 대표하는 사례로 여겨진다. 창랑호는 부산에서 출항하여 제주도로 향하던 중, 북한의 무장어선에 의해 공격받고 납치되었다.
납북 당시 창랑호에는 7명의 선원과 4명의 승객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북한으로 끌려갔다. 납북자들은 북한에서 강제노역과 정치적 세뇌를 당하며 힘든 상황을 겪게 되었다. 사건 이후 납북자들의 생사 여부와 그들의 신원, 그리고 북한에서의 처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는 국내적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납북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랑호 사건은 또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였으나, 납북자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의 인권 침해와 납치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증가하게 되었고, 창랑호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납치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창랑호 납북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당시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북한의 인권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으며, 국제 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들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창랑호 납북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현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