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șescu)가 집권하던 시기 시행된 인구 정책은 국가의 강제적인 개입을 통해 출산율을 극대화하려 한 극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1966년 차우셰스쿠는 인구를 늘려 국력을 신장시킨다는 명목하에 '포고령 제770호(Decree 770)'를 선포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피임 도구의 유통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는 2000년까지 인구를 3,0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여성의 가임 능력을 국가의 자산으로 간주했다.
정책 집행 과정은 매우 억압적이고 반인권적이었다. 45세 미만의 여성은 최소 4명의 자녀(이후 5명으로 상향)를 낳아야 했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자녀가 없는 성인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국가 기관은 산부인과 검진을 강제하여 임신 여부를 감시했는데, 이를 감시하는 요원들은 '월경 경찰'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또한 성교육은 금기시되었고, 피임약이나 콘돔 등의 사용은 불법화되어 민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출산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으나, 곧 심각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는 국가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많은 가정은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불법적인 낙태 시술이 암암리에 성행하면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시술을 받은 수많은 여성이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후유증을 얻었다. 루마니아의 모성 사망률은 이 시기 주변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졌으며, 이는 정책이 의도한 인구 증가와는 상반된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비참한 결과는 버려진 아이들의 문제였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양육할 수 없게 되자 수만 명의 아동이 국립 고아원에 버려졌다.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 불린 이들은 열악한 수용 시설에서 영양실조와 방치 속에 자라났으며, 일부 시설에서는 에이즈(AIDS) 집단 감염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아이들은 적절한 교육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사회적 낙오자로 성장했으며, 훗날 1989년 루마니아 혁명 당시 차우셰스쿠 정권을 무너뜨리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은 인간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와 출산의 자기 결정권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침해했을 때 어떤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이 정책은 인구의 양적 팽창에만 집착한 나머지 질적인 삶과 인권을 완전히 무시했으며, 루마니아 사회에 수십 년간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결국 1989년 차우셰스쿠의 처형과 함께 이 포고령은 즉각 폐지되었으나,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루마니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