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공(曾鞏, 1019~1083)은 중국 북송 시대의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당나라와 송나라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문장가 8인을 일컫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이다. 자는 자고(子固)이며 남풍(南豊) 출신으로,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남풍선생(南豊先生)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화려한 수식보다는 이치에 맞고 실용적인 문장을 중시하여 북송기 산문 혁신 운동의 중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증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수천 마디의 글을 한 번 읽으면 암송할 정도의 천재성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당대의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그의 각별한 인정을 받았으며, 1057년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지방관으로서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부역을 경감하는 등 행정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중앙 정부에서는 사관(史官)으로서 역사서 편찬과 문헌 정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문학 세계는 유교적 도덕관과 실질적인 유용성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증공은 문장이란 도(道)를 전달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사상을 견지하였으며, 이는 그의 글이 기교를 멀리하고 소박하면서도 논리적인 구조를 갖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의 문풍은 당시 유행하던 난해하고 형식적인 문체인 변려문을 비판하고, 산문의 질서를 바로잡아 명료한 서술 방식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그의 시와 문을 모은 『원풍류고(元豊類藁)』가 있으며, 고대 문헌의 교감(校勘)과 정리 작업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증공의 산문은 후대 명나라와 청나라의 고문학파(古文學派)로부터 문장의 전형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그의 논설문과 기문(記文)은 구성이 치밀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문장 학습을 하는 선비들에게 필독서이자 교본으로 널리 읽혔다.
증공은 당송팔대가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려함은 덜하지만, 유교적 이상을 문학적으로 가장 성실하게 구현하려 노력한 인물이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단순히 개인의 창작 활동에 그치지 않고 북송 시대의 학풍과 문화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그의 문장은 고전문학 연구에 있어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며, 실용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문학의 표본으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