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전(諸葛瞻, 227년 ~ 263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이자 장령으로, 자는 사원(思遠)이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친아들이며 낭야군 양도현 출신이다. 제갈량이 46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로, 제갈량이 북벌을 진행하던 중 본국에 보낸 편지에서 아들의 재능이 너무 일찍 드러나 장래를 걱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제갈량이 사망할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8세였으나,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촉한 백성들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17세의 나이로 촉한의 공주와 혼인하여 부마도위가 되었으며, 이후 빠른 승진을 거듭하여 상서복야와 군사장군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제갈전은 서화와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촉한의 백성들은 조정에서 좋은 정책이 나올 때마다 그것이 제갈전의 아이디어라고 믿었을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입은 명성이 실제 능력보다 과장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대장군 강유의 거듭된 북벌이 국력을 소모시킨다고 판단하여 이를 견제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동궐, 번건 등과 함께 국정을 보좌하며 환관 황호의 권력 독점을 막으려 노력했으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호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제갈전은 아버지가 세운 촉한의 기틀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으려 애썼으나 군사적, 정치적 실권의 한계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63년 위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등애가 험준한 음평로를 통과하여 기습해 오자 제갈전은 이를 막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 그는 부성에서 적을 요격하려 했으나 전술적 판단 착오로 요충지를 선점하지 못하고 면죽으로 후퇴했다. 등애는 제갈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항복하면 낭야왕으로 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으나, 제갈전은 사자를 참수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제갈전은 면죽 전투에서 아들 제갈상과 함께 전사하며 촉한에 대한 마지막 충성을 다했다. 그의 나이 37세였으며, 그가 전사한 직후 촉한은 위나라에 투항하며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제갈전이 등애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한 군사적 식견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의 멸망 앞에서 목숨을 바친 그의 충절에 대해서는 이견 없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