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세가는 중국 후한 말기 및 삼국 시대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military strategist인 제갈량의 아들로, 그의 별칭은 '세가'다. 그는 220년부터 263년까지의 기간 동안 활발히 활동했으며, 주로 촉한의 군사 및 정치적 업무를 담당했다. 제갈량은 그가 어린 시절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제갈세가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으며 국가를 위해 노력했다.
제갈세가는 유능한 지휘관으로 평가되었지만, 그의 정치적 재능은 아버지만큼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는 촉한의 황제 유선을 보좌하며 여러 차례 전투를 지휘했으나, 전쟁에서의 성공보다 패배가 더 많았다. 특히, 263년의 평제 전투에서는 웅진과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고, 이후로도 군사적 혹은 정치적 장점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촉한은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했으며, 여러 세력과의 정치적 대립이 심화됐다. 제갈세가는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제갈세가는 정치적 압박 속에서 점점 더 힘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제갈세가는 263년 촉한이 위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외부의 적과 내적인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의 생애는 아버지 제갈량의 전쟁과 정치적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지만, 제갈세가는 여전히 삼국시대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