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룡(丁海龍, 1893~1970)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사천(沙川)이며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이다. 그는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산가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막대한 재산과 일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보성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당시 보성군 득량면 등지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도 그는 변함없는 항일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정해룡은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수행하며 물심양면으로 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거액의 군자금을 지속적으로 전달하였다. 특히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된 신간회(新幹會) 보성지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민족 협동 전선 구축과 일제의 수탈 정책에 맞서는 데 힘을 쏟았다.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역시 그의 주요한 활동 영역이었다. 그는 무지한 민중을 일깨우는 것이 국권 회복의 지름길이라 믿고 육영 사업에 매진하였다. 보성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거나 기존 교육 기관을 후원함으로써 청년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고 근대적 학문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는 일제의 식민 교육 정책에 맞서 민족의 역량을 보존하려는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건국 준비와 지역 사회 안정화에 기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해룡의 생애는 부유한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민족의 고난에 동참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호남 지역 항일 정신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