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현(鄭有賢)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고려 말의 충신이자 성리학의 비조로 추앙받는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조부로 잘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생몰년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의 활동 시기는 고려 말기 지방 사족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을 모색하던 시점과 맞물려 있다. 역사적으로 개인의 상세한 정치적 업적보다는 연일 정씨 가문이 명문가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서 족보학적 의의를 가진다.
가계를 살펴보면 그는 연일 정씨의 시조인 지주사(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다. 부친은 정종소(鄭從韶)이며, 슬하에 아들 정운관(鄭云瓘)을 두었다. 정운관은 훗날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벼슬이 동지밀직사사에 이르렀는데, 그가 바로 정몽주의 부친이다. 정유현은 정몽주에게 할아버지가 되며, 이러한 가계의 흐름은 이 집안이 당대 영남 지방의 유력한 재지 사족으로서 학문적 소양과 사회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관직으로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다고 전해진다. 군기감은 고려 시대에 병기(兵器)와 기치(旗幟) 등 군수 물자의 제조를 관장하던 관청이다. 직함 앞에 붙은 '검교(檢校)'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에 널리 행해진 제도로, 실제 직무를 보지 않고 품계만 받는 명예직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그가 당시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명망과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시사하며, 손자인 정몽주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활약할 수 있는 가문적 배경이 되었다.
정유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천은 정몽주의 출생지이자 연일 정씨 가문의 주요 세거지(世居地)로서, 정유현이 이곳에 터를 잡고 가문을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에 정몽주가 동방이학의 조(祖)로 추앙받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가문의 위상이 크게 격상됨에 따라, 정유현 또한 연일 정씨 문중에서 중요한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의 존재는 고려 말 지방 중소 지주층이 신진사대부로 성장해 나가는 사회적 변동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