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수(독립운동가)

정봉수(鄭鳳守, 1891~미상)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그는 국권 회복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항일 투쟁에 앞장섰으며, 특히 강릉 지역 주민들의 독립 의지를 결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확산되자, 정봉수는 강릉에서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기정, 조대현 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비밀리에 회동하여 거사 일정을 논의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며 조직적인 준비를 이어갔다.

1919년 4월 4일, 정봉수는 강릉 장날을 이용하여 모여든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그는 시위대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비와 무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를 이끌었다. 이 사건은 강릉 지역 항일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지역 민중의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시위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된 정봉수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지들의 명단을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도 그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신념을 꺾지 않았으며, 출옥 후에도 지역 사회의 계몽과 독립 정신 함양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봉수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활동은 강릉 지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날 후손들에게 애국심과 독립 정신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시위 주도자를 넘어 지역 사회의 민족적 자긍심을 지켜낸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