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종은 대한제국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치 기관 중 하나로, 청의 압력 아래에서 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정부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면서 정무종이 세워졌고, 이후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 체계가 자리 잡기 전까지 한국의 정치적 운영에 중요한 기구로 기능하였다. 정무종은 주로 국가의 내외 정책을 조율하고, 외교 업무를 담당했지만,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 권한과 기능이 제한되었다.
정무종의 구성은 일본인과 한국인 관료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당시 한국의 정치적 독립성을 억제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 기구는 일본의 통치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관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일본인에게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정무종은 한국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이후 독립운동의 배경과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1907년, 고종이 즉위한 이후 정무종은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는 일본의 간섭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본은 정무종의 기능을 축소하고, 그의 권한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이 시기는 일본의 대륙 진출과 식민지 정책 강화를 위한 기간으로, 정무종의 존재는 그러한 일본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조정되었다.
결국, 정무종은 1910년 한일합병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해체되게 되며, 이는 한국의 정치 체계가 일본 제국주의에 완전히 포섭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무종의 역사는 한국의 근대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한국인들의 저항 의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