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은 전민희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인 ‘아룬드 연대기’, 특히 그 첫 번째 장인 ‘세월의 돌’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초자연적 존재다. 이들은 자연의 순수한 정수가 형상화된 존재로, 불, 물, 바람, 땅의 네 가지 원소 속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령은 물질계와는 다른 차원인 정령계에 거주하며, 정령사와 계약을 맺음으로써만 그 힘을 인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정령의 계급 체계는 힘의 크기와 자아의 성숙도에 따라 하급, 중급, 상급, 그리고 각 속성을 다스리는 정령왕으로 나뉜다. 불의 정령 샐러맨더와 엘도라, 물의 정령 운디네와 엘라임, 바람의 정령 실프와 미네르바, 땅의 정령 노움과 노아스 등이 대표적인 명칭으로 등장한다. 계급이 높을수록 정령은 더욱 강력한 마력을 발휘하며, 단순한 본능을 넘어선 고도의 지성과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된다.
정령사와 정령의 관계는 단순한 주종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의 계약과 정신적 교감에 기반한다. 정령을 소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령사의 정신력과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며, 소환된 정령은 정령사의 명령을 따르지만 그 방식은 정령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정령사는 정령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정령과의 친밀도나 이해도가 높을수록 정령의 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
아룬드 연대기의 핵심 유물인 ‘세월의 돌’은 정령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인공 파비안은 세월의 돌을 매개로 하여 여러 속성의 정령들을 소환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성장한다. 세월의 돌은 정령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일반적인 정령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환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며, 작중에서 정령의 힘은 마법과는 차별화된 자연의 섭리이자 강력한 전투 수단으로 묘사된다.
정령은 물질계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더라도 소멸하지 않고 자신의 근원인 정령계로 돌아가 힘을 회복하는 순환적 생명력을 지닌다. 이들은 인간의 탐욕이나 악한 의지보다는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존재들이기에, 정령사의 내면적 순수함이나 자연에 대한 태도가 소환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정령은 아룬드 연대기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자연의 대변자이자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인격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