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촉

전촉(前蜀)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십국 중 하나로, 907년부터 925년까지 사천성(四川省) 일대를 지배했던 왕조다. 당나라 말기 사천 지역의 평릉절도사였던 왕건(王建)이 세웠으며, 수도는 성도(成都)였다. 당나라가 황소의 난 등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후당이 건국되는 혼란기 속에서 왕건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전촉의 기틀을 다졌다.

왕건은 유능한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로서 당나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사천 분지 전역과 중경, 한중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전촉은 지형적으로 험준한 산맥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기에 중원의 전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왕건은 내정을 안정시키고 농업을 장려하며 조세를 감면하는 등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정책을 펼쳤다.

전촉은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북방의 전란을 피해 수많은 문인과 화가, 장인들이 비교적 평온했던 성도로 모여들었으며, 이는 전촉이 당나라의 세련된 문화를 계승하고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차와 비단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인쇄술의 발달로 유교 경전과 불경이 대량으로 간행되었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위장(韋莊) 등이 활약하며 화려하고 섬세한 문풍을 특징으로 하는 화간파(花間派) 문학의 토대를 닦은 곳도 바로 전촉이다.

그러나 왕건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주(後主) 왕연(王衍)의 치세에 들어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왕연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향락과 사치에 빠졌으며, 환관과 간신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정치가 부패했다. 가혹한 수탈로 인해 민심은 이반되었고 군대의 기강도 해이해졌다. 이 시기 중원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후당(後唐)은 전촉의 내부 분열을 틈타 대규모 침공을 감행하였다.

925년, 후당 장종(莊宗)의 명을 받은 곽숭도(郭崇韜)의 원정군에 의해 전촉은 건국 18년 만에 멸망하였다. 비록 전촉은 단명한 왕조였으나, 사천 지역에 축적된 경제적 부와 문화적 역량은 이후 이 지역에 들어선 후촉(後蜀)으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전촉은 오대십국의 혼란기 속에서도 특정 지역이 독자적인 경제권과 문화권을 형성하며 번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