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안(후한)

전안(田晏, ? ~ ?)은 중국 후한(後漢) 후기의 무장이다. 주로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치세에 활약했으며, 북방의 이민족인 강족(羌族)과 선비족(鮮卑族)을 상대하는 북방 방위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당대 명장인 단경(段熲) 등과 함께 주로 서북방 전선에서 군사 활동을 펼쳤으나, 무리한 북방 원정을 추진하다가 역사적인 대패를 겪은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 군사 활동은 주로 강족 토벌에 집중되어 있었다. 후한 후기 서북 지역에서는 강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전안은 단경의 지휘 아래에서 강족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공을 바탕으로 그는 점차 군부 내에서 입지를 다졌고, 북방 이민족의 동태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특히 강족을 통제하는 주요 관직인 호강교위(護羌校尉)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후한의 변방 방위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영제 시기에 이르러 북방의 선비족이 단석괴(檀石槐)라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통합되면서 후한의 변경을 지속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177년(희평 6년), 하육(夏育)이 선비족에 대한 대규모 원정을 조정에 건의하자 전안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출병을 주장했다. 당시 조정의 많은 신료들, 특히 채옹(蔡邕) 등은 국력의 소모와 원정의 위험성을 들어 강력히 반대했으나, 전안을 비롯한 주전파 무장들은 황제인 영제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결국 대규모 선비족 토벌전이 결정되었다.

전안은 파로장군(破虜將軍)으로 임명되어 하육, 장민(臧旻)과 함께 각각 1만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 세 갈래로 나뉘어 국경을 넘었다. 전안의 군대는 운중(雲中) 지역을 지나 선비족의 영토 깊숙이 진군했다. 그러나 단석괴가 이끄는 선비족은 후한 군대의 진로를 미리 파악하고 각 부족의 병력을 모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유인 전술과 기동력에 말려든 후한의 군대는 선비족에게 철저하게 짓밟혔고, 출정했던 병력의 십중팔구를 잃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선비족 원정의 실패는 후한의 군사력과 재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고, 국가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전안을 포함한 세 명의 장군은 병력과 장비를 모두 잃고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건져 도망쳐 돌아왔다. 조정은 대패의 책임을 물어 전안 등을 하옥시켰으나, 이들은 속죄금을 내고 평민으로 강등되는 선에서 사형을 면했다. 전안은 강족 토벌에서는 유능한 지휘관으로서 공을 세웠으나, 선비족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국가적 재난을 초래한 장수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