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용(張澈容, 1892~1924)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결성(結城)이며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다. 그는 조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무장 투쟁과 조직 활동에 헌신하였으며, 항일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장철용은 함경남도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지역 주민들을 조직하여 시위에 참여하게 하고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 망명을 결심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간 장철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교류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무장 투쟁 단체인 의군부(義軍府) 등에 가담하였다. 그는 북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항일 무장 독립군 부대에 소속되어 일제 군경과의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또한 독립군의 군사 훈련과 조직 정비에 힘쓰며 무장 투쟁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20년대 초반, 그는 국내 진공 작전과 주요 시설 파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활동 도중 밀고와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에 걸려 체포되었으며,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 후유증과 열악한 수감 환경으로 인해 1924년 끝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장철용의 생애는 일제의 압제에 굴하지 않은 불굴의 항일 투쟁 정신을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