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주(張龍珠, 1894~1948)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그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래 중국 상하이와 미국을 거치며 일평생을 조국 광복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바쳤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틀을 다지고 미주 한인 사회의 결집을 이끌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장용주는 고향인 의주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며 항일 투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며,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기 조직 운영에 가담하였다. 그는 임시정부 내무부 산하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독립 자금 조달에 기여하는 등 정부의 운영 기반을 안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20년대 초반, 그는 활동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도산 안창호가 창설한 흥사단(興士團)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미주 한인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한인 사회의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장용주는 미주 지역 최대의 한인 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활동하며 외교적, 재정적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국민회의 주요 직책을 맡아 동포들로부터 모금한 독립 의연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재미 한인들이 조직한 무장 단체인 국방군 활동에도 관여하며 다각적인 항일 투쟁의 경로를 모색하였다.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미주 지역에서 한인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힘쓰던 그는 194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용주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전 세계를 무대 삼아 독립의 당위성을 알린 인물로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