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張邈, ? ~ 195년)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인이자 군웅으로, 자는 맹탁(孟卓)이며 연주 동평국 수장현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협객 기질이 있어 가산을 털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즐겼으며, 이로 인해 당대의 명사들 사이에서 '팔주(八廚)'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질 만큼 명성이 높았다. 조조, 원소와는 오랜 친구 사이였으며,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의랑을 거쳐 진류태수에 임명되어 지역 정치를 주도했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될 당시 장막은 진류태수로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참여했다. 연합군의 맹주였던 원소가 오만한 태도를 보이자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는데, 이 일로 인해 원소의 원한을 샀다.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죽일 것을 종용했으나 조조는 친구 사이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이 사건 직후 장막은 조조의 배려에 감동하여 그와 더욱 깊은 신뢰 관계를 맺었으며, 조조가 서주 정벌을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맹탁(장막)에게 의지하라"고 말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
그러나 194년, 조조가 서주의 도겸을 재차 정벌하기 위해 본거지인 연주를 비운 사이 장막은 조조를 배반했다. 배반의 주된 원인으로는 조조가 연주의 명사였던 변양을 처형한 것에 대한 공포와 불만, 그리고 진궁의 설득이 꼽힌다. 장막은 동생 장초 및 진궁과 모의하여 당시 갈 곳을 잃고 떠돌던 여포를 연주로 불러들여 주인으로 추대했다. 이로 인해 조조는 견성, 동아, 범현의 3개 현을 제외한 연주 전역을 잃고 큰 위기에 빠졌다.
이후 조조가 서주에서 회군하여 연주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장막과 여포의 군대는 약 2년에 걸친 공방전 끝에 조조의 반격에 밀려 패배했다. 연주를 완전히 상실한 장막은 여포를 따라 서주의 유비에게 망명했다. 이후 원술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러 가던 도중, 그를 따르던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장막의 죽음 이후 옹구에 남아 있던 그의 동생 장초와 일가족은 조조의 군대에 의해 모두 멸족당했다.
장막은 당대 최고의 명망을 갖춘 인물이었으나, 급변하는 난세의 흐름 속에서 확고한 주관을 지키지 못하고 주변의 설득과 불안감에 휩쓸려 몰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조조와의 깊은 우정을 저버린 그의 배신은 조조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조조가 향후 가신들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고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호방한 성품과 인망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승자가 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전형적인 난세의 군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