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만(張德萬, 1891~미상)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그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무장 투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의 생애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운 치열한 항일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장덕만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만주로 건너가 박장호(朴長浩), 조맹선(趙孟善)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합류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만주를 근거지로 삼아 국내에 대원들을 파견하여 일제 통치 기구를 파괴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무장 독립운동 단체였다.
1920년 장덕만은 단장 박장호의 특명을 받고 대원들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는 평안도와 서울 일대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당시 독립군은 무기 구입과 조직 운영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절실한 상황이었으며, 장덕만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자산가들을 설득하거나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금을 확보하여 만주 본부로 전달하였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일제 경찰의 추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체포되어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1921년 서울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 및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장기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장덕만의 독립을 향한 공로를 인정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구체적인 서거 연도나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그가 전개한 무장 항쟁과 자금 모집 활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