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룡

이천룡(李千龍, 1902년 1월 23일 ~ 1946년 8월 1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광주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며,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천룡은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소에 입교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열단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의열단 활동 중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주로 폭탄 투척과 같은 직접적인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였으며, 다수의 대담한 거사로 일본 경찰에 의해 끈질기게 추적받았다.

1940년대에는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의 재조직을 시도했으며, 항일전선 통일운동에도 힘썼다.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미군에 의해 서울에 입성한 후 조선 건국 준비를 위해 다방면으로 힘썼으나, 정치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천룡은 광복 후 활동 중 독립운동과 전후 혼란 속에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1946년 8월에 사망했다. 그의 삶과 공적은 민족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여러 사료와 기록을 통해 그의 활약상이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이천룡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희생과 노력은 후대에 중요한 독립 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