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설(李進説, 1869년 1월 5일 ~ 1940년 9월 10일)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계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호는 성암(星巖)이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서당에서 학문을 닦았다. 1895년부터는 서당을 운영하며 교육 활동을 시작했고, 1907년에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반대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더불어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특히 1920년대부터는 경남지역의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일본의 감시와 억압이 심해져 독립운동 활동이 어려워지자,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더욱 노력했다.
1940년 9월 10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진설의 생애는 교육과 독립운동이 중심이었으며, 그의 교육 활동은 그가 사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업적과 정신은 현재도 많은 이들에 의해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