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후한, 161년 ~ 219년)은 중국 후한 말기 및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다. 자는 중효(仲孝)이며, 양주(凉州) 무위군(武威郡) 출신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에게서 성장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았다. 황건적의 난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많은 이들이 난민이 되었으나, 이응은 적극적으로 이주민들을 도와주었다. 이에 따라 신망이 두터워졌으며 이 지역 관리로 임명되어 민심을 안정시켰다.
이후 조조의 천하통일 과정에서 유비를 돕기 위해 활동했다. 유비가 형주에 주둔할 때 그의 추천으로 참모가 되었다. 그는 유비의 영토 확장과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주로 군사 및 외교 정책을 조언하였다.
유비가 촉을 평정한 후, 이응은 촉한에서 중요한 벼슬을 받았고, 한중(漢中) 전투 등에서 군사 작전을 보좌했다. 그는 내정에도 깊이 관여하여 민생 안정과 행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응은 조조의 세력과 맞서 싸우며 유비와 함께 촉한을 건설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나, 219년 유비가 규모가 큰 군사 작전에 집중하는 동안, 이응은 반격을 막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은 유비에게 큰 손실이었으며, 촉한 내부의 사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응은 후대에 충성심과 업적을 인정받아, 촉한 멸망 이후에도 후손과 역사서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