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 야스오(岩倉具視, 1825년 6월 10일 ~ 1883년 8월 20일)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에도 시대 말기와 메이지 시대 초기에 활동하였다. 그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일본 정부의 근대화와 서구화에 기여하였다.
이와쿠라는 교토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 체계에 반대하며, 새로운 정치 체제를 추진하는 데 힘썼다. 특히, 그는 외국과의 외교에서 일본이 강국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868년 그는 일본의 실권을 잡은 메이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이후 일본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871년에서 1873년까지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파견되어, 외교 및 군사 분야에서의 개혁을 연구하였다. 이와쿠라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근대적인 외교 정책을 마련하고, 외국의 기술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와쿠라 야스오는 또한 일본의 정치 및 교육 제도를 reform(개혁)하는 데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현대 일본 교육 시스템의 초석을 다지는 데 헌신하였다. 그의 개혁은 일본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와쿠라는 생전 여러 차례 정치적 난관에 봉착하였으나, 일본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1883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업적은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