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의 난(裔施愛의 난)은 1467년에서 1468년 사이에 발생한 조선 중기의 난으로, 조선왕조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주로 남원 지역에서 발생하였으며, 이시애라는 인물이 주도하였다.
이시애는 원래 남원 지역의 유력한 토호 세력으로, 명확한 출신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가족은 중소 양반 가문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는 조선 왕조의 부패와 지방 세력의 불만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난의 주요 원인은 조선 정부의 부패, 세금의 중과, 그리고 권력 쟁탈전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었다.
이시애의 난은 처음에는 남원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시애는 많은 지지자를 얻어 조선 정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세력의 확장을 시도했으나, 국가의 군대와의 대치에서 패배하게 된다. 결국 1468년에 이시애는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이후 처형되었다.
이 시기의 난은 조선 왕조의 정치 구조와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시애의 난은 권문세족과의 갈등, 그리고 지역 토호 세력의 반란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조선 후기의 농민 반란과 쟁투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조선 사회는 더욱 정치적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후속 세대의 여러 반란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