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코 세이겐(伊良子 清玄)은 난조 노리오의 소설 『스루가조 어전시합』과 이를 원작으로 한 야마구치 다카유키의 만화 『시구루이』의 핵심 인물이다. 수려한 용모와 천부적인 검술 재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며, 코간류 도장에 입문하여 주인공 후지키 겐노스케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야망을 품고 있으며, 이는 작중 그의 행보를 결정짓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
코간류의 당주 이와모토 코간의 문하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코간의 첩인 이쿠와 내통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파멸을 맞이한다. 분노한 이와모토 코간은 코간류의 비기인 '흐르는 별'을 사용하여 이라코 세이겐의 두 눈을 베어 실명시키고 그를 파문했다. 이 사건은 이라코 세이겐이 코간류 전체에 대해 처절한 복수심을 품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실명한 이후 이라코 세이겐은 장님이 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명역류(無名逆流)라는 독창적인 검술을 창시한다. 이는 칼끝을 지면에 꽂고 발가락 사이에 칼등을 끼워 지탱한 뒤, 몸의 탄성을 이용하여 하단에서 상단으로 베어 올리는 변칙적인 기법이다. 그는 이 비정통적인 검법을 앞세워 과거 자신을 몰아냈던 코간류 문하생들을 차례로 도살하며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이라코 세이겐의 복수극은 결국 자신의 스승이자 원수였던 이와모토 코간을 살해하며 정점에 달한다. 이후 스루가 대납언 도쿠가와 다다나가가 개최한 어전시합에서 숙적인 후지키 겐노스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마지막 결투는 두 검객의 개인적인 은원을 넘어, 잔혹한 봉건 질서 속에서 파멸해가는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라코 세이겐은 전통적인 무사도나 도덕적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탐욕적이고 냉혹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동시에 신분제의 벽을 깨고자 했던 야심가이자, 부조리한 폭력에 희생되어 괴물이 된 비극적인 인물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그의 존재는 작품 전체에 흐르는 잔혹 미학과 허무주의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축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