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1905년 11월 12일 ~ 1989년 5월 3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고령이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안동이다.
이동녕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해외로 망명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여러 운동에 참여하며, 임시정부의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1940년대에는 광복군에 소속되어 군사작전에도 참여하였으며, 전시 중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수행했다.
광복 이후, 이동녕은 독립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초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국회에서 사회정책 및 교육 개혁에 대한 발언을 하며 활발히 활동하였고,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법제에 기여했다.
이동녕은 그의 정치적 경력 외에도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도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6.25 전쟁 이후에도 다양한 사회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후 그는 1958년까지 정치 활동을 이어가며, 생애 대부분을 한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이동녕은 1989년 5월 30일,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한국 독립운동과 현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