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李東寧, 1906년 2월 1일 ~ 1950년 4월 24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기에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민족의식이 강해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동녕은 경북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유학하며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그는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동녕은 임시정부에서 여러 가지 직위를 맡아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는 대한독립군과 같은 군사 조직의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정치적 및 군사적 전략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이동녕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좌우 합작을 통한 통일과 민주주의 정착을 주장하며, 이념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정치적 활동은 한국전쟁 이전의 불안정한 시기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1948년 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동녕의 정치적 여정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급변하게 된다. 그는 전쟁 중 공산당과 관련된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강제 수용소에 이송되었다. 이동녕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의 삶과 업적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독립운동과 정치적 노력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독립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