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희(隆熙)는 조선시대의 제27대 왕으로, 이름은 이재(李載)이며, 1864년부터 1907년까지 재위하였다. 융희는 1884년, 16세의 나이로 즉위하였고, 재위 기간 동안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여러 가지 개혁과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의 통치 초기에는 정치적 혼란과 외세의 압박이 심한 시기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융희는 특히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반발과 외세의 간섭으로 인해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다. 1905년 일어난 을사늑약으로 인해 일본의 강압적인 통치가 시작되었고, 융희는 실질적인 권력을 잃게 되었다.
1907년, 일본의 압력으로 뒤이어 발생한 고종의 퇴위 사건으로 인해 융희는 제위에서 물러나게 되고, 왕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당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의 억압적인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야 했으며, 1926년에 사망하였다. 융희는 조선의 근대화와 외세의 침탈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