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신(柳得臣, 1862년 - 1940년)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저명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다. 그는 조선의 전통적인 교육 체계와 방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적 교육 개혁과 민족 자각을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그의 생애는 국가의 독립을 위한 역사적 노력과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는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유득신은 1862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부터 그는 한문과 서양 학문을 두루 배우며 자랐다. 이후 그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이었다. 그는 1907년에 설립된 '동아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현대적 교육 방식을 도입하는 데 힘썼다.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도 주목받는다. 유득신은 1907년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글은 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민족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혹독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보도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한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유득신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교육과 언론 활동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는 민족의 의지를 고양시켰고, 이후에도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에 연루되어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노력은 후에 한국의 독립과 민족 재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1940년, 유득신은 생애의 마지막을 맞이하기까지 독립에 대한 꿈과 열망을 절대적인 믿음으로 품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