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는 미국의 교육자, 식물학자이자 군인으로, 일본 근대 교육과 농업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농과대학교(현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의 제3대 총장을 역임하며 농학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미국 남북 전쟁 당시에는 북군 장교로 참전하여 제21매사추세츠 보병연대를 지휘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군사적 경력도 쌓았다.
1876년, 클라크는 일본 메이지 정부의 초빙을 받아 홋카이도 개척을 위한 인재 양성 기관인 삿포로 농학교(현 홋카이도 대학)의 초대 교두(부교장)로 부임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의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선진적인 서구의 농업 기술과 교육 체계 도입이 절실했으며, 클라크는 매사추세츠 농과대학교의 교육 모델을 바탕으로 학교 운영과 커리큘럼을 설계했다. 그는 약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일본에 머물렀지만, 실천적이고 과학적인 교육 방식을 도입하여 학교의 초기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클라크는 학생들에게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과 도덕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의 엄격한 교칙 대신 "신사답게 행동하라(Be gentleman)"는 단 하나의 지침만을 내세워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또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윤리관을 전파하며 학생들이 고결한 품성을 갖출 것을 촉구했다. 그가 1877년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며 남긴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은 오늘날까지도 청년들에게 도전을 촉구하는 명언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의 교육 철학은 일본 근대 지성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클라크의 지도를 직접 받은 제자들과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들은 이후 우치무라 간조, 니토베 이나조와 같은 일본 근대사의 핵심적인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또한 그가 도입한 서구식 농작물과 농기구, 가축 사육 방식은 홋카이도 농업 현대화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일본 전체의 산업화 과정에도 기여했다.
미국으로 귀국한 후 클라크는 매사추세츠 농과대학교 총장직을 이어갔으나, 이후 광업 회사를 설립하여 사업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동업자의 배신과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건강 악화로 1886년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비록 말년은 평탄하지 않았으나, 그가 일본에 심어놓은 교육적 유산과 정신은 홋카이도 대학의 학풍으로 계승되어 현대까지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