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캘리는 미국의 군인이며, 베트남 전쟁 중 미라이 학살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40년 3월 15일 태어난 그는 1964년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캘리는 전쟁에서 제57 보병 연대의 대위로 복무하며,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그의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전투 중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 경험을 쌓았다.
1970년 3월 16일, 캘리는 베트남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인 미라이 학살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사건에서 미군은 미라이 마을에 거주하던 민간인 약 500명을 살해하였다. 대위 캘리는 그 작전의 지휘를 맡았고, 고위 군 관계자들의 지시에 따라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을 실행했다. 이 사건은 나중에 국제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비판이 급증하게 되었다.
미라이 학살 사건 이후, 윌리엄 캘리는 전쟁 범죄에 대한 기소를 받았다. 그는 1971년 군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3년 만에 석방되었으며, 이는 그가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군 법원에서의 그의 재판은 전쟁 범죄와 관련하여 미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캘리 사건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군인의 도덕성에 대한 깊은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는 군의 명령에 대한 복종, 민간인 보호의 중요성, 그리고 전쟁에서의 인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했다. 윌리엄 캘리는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와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이 사건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례로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