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파(維政斥邪派)는 조선 후기의 정치 이념이자 사상 집단으로, 주로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활동했다. 이들은 외세와의 접촉과 서구 문물의 유입을 반대하며,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와 체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했다. 위정척사파는 특히 외세의 압박에 대한 저항과 함께, 조선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위정(維政)" 즉, 정권의 유지와 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했고, "척사(斥邪)"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외세와 비정통 사상을 배척하고자 했다.
위정척사파의 주요 인물로는 최익현, 유인석, 강유위 등이 있다. 이들은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최익현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며, 대외적으로는 해외 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보였고, 사실상 찬탈자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인물들은 위정척사파의 사상을 구체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정척사파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서양 열강의 압박과 일본의 침략 위협을 받으며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에 따라 이들은 더욱 강력하게 전통과 자주성을 지키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특히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외세의 간섭이 심화되면서, 이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해졌다. 위정척사파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외세와의 협상에 반대하며 자국의 주권과 정체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위정척사파의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서구 문물의 유입과 사회 구조의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위정척사파는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지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상이 이후의 민족주의 운동과 반식민지 운동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위정척사파의 사상은 조선의 전통을 존중하는 한편, 비자주적인 외세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하며, 이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