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7세기 영국 내란기 중 의회의 요청으로 소집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된 개신교 신앙고백서다. 1643년부터 1649년까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이 총회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리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당시 정치적, 종교적 혼란 속에서 청교도 중심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교회의 표준 문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이 고백서는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망라한다. 제1장에서 성경의 권위를 가장 먼저 다루며 모든 신앙의 근거가 오직 성경에 있음을 천명한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예정론, 언약 신학을 중심으로 한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는 칼뱅주의 신학 체계를 가장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한 문서로 평가받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립 배경에는 정치적 동맹이 존재했다. 잉글랜드 의회는 왕당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엄숙 동맹과 언약'을 체결했고, 그 대가로 양국 교회의 일치를 약속했다. 비록 잉글랜드에서는 왕정복고 이후 국교회 체제가 강화되면서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나, 스코틀랜드 교회는 이를 공식적인 신앙의 표준으로 채택했다. 이후 이 문서는 전 세계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토대가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연방 국가 등 전 세계 장로교회의 표준 문서로 자리 잡았다. 대다수의 장로교단은 이 고백서를 성경 다음가는 신앙적 규범인 '보조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직분 선서나 교리 교육의 지침으로 활용되며,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계승하고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신앙고백서 외에도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 예배지침, 교회 정치 형태 등을 함께 작성하여 신앙 생활 전반을 규정했다. 특히 소요리문답은 평신도와 어린이 교육을 위해 널리 보급되어 개혁주의 신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문서들의 집합체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교리적 체계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신학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