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현(元嗣賢, 1339~1423)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중수(仲修), 호는 죽헌(竹軒)이다. 고려의 관료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고려 공민왕 대에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진출하였다. 전교부령(典校副令)과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적 역량을 쌓았다.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관리로서 명성을 얻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태조와 태종의 신임을 받아 새로운 조정의 행정 기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와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가의 대소사를 원만하게 처리하면서도 사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아 동료 관리들과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원사현은 1423년(세종 5) 8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세종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회를 멈추고 제문을 내려 애도하였다. 사후에는 희정(禧貞)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강원도 원주의 칠봉서원(七峯書院) 등에 배향되어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삶은 왕조 교체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사대부의 전형을 보여준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은거한 인물들과는 달리, 새로운 시대의 부름에 응하여 현실적인 행정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국가와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