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은 1917년 12월 25일 하르키우에서 선포된 초기 소비에트 공화국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지역의 주도권을 두고 키이우의 우크라이나 중앙의회(중앙 라다)가 선포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에 대항하기 위해 볼셰비키 세력에 의해 설립되었다. 제1차 전우크라이나 소비에트 대회에서 수립이 결의되었으며, 명목상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내의 자치 공화국임을 자처하며 출범했다.

당시 키이우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은 독립적인 국가 지위를 추구했으나, 하르키우의 소비에트 정부는 이를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은 러시아 볼셰비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키이우로 진격했으며, 1918년 2월에는 실제로 키이우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통제권과 혁명의 정통성을 두고 치열한 내전을 벌였다.

이 공화국의 행정 기구는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비서부로 구성되었다. 정부는 토지의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등 볼셰비키사회주의 정책을 해당 지역에 이식하려 시도했으나, 지속되는 전쟁 상황과 짧은 존속 기간으로 인해 실질적인 행정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는 독자적인 군사 조직을 갖추기보다 러시아 적군(Red Army)의 지휘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적 특징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은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해오자 급격히 세력을 잃었다. 이에 따라 하르키우 정부는 다른 군소 소비에트 세력들과 통합하여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을 형성했으나, 결국 점령군에 밀려 영토를 상실하고 소멸했다. 비록 단명했으나, 이 공화국은 이후 1919년 재건된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Ukrainian SSR)의 정치적 전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