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요(王曜)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이자 무장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삼국시대 후반부에 활동하였으며, 주로 서부 전선에서 촉한의 침공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위나라에서 농서태수(隴西太守)라는 중책을 맡았다. 농서 지역은 위나라와 촉한의 접경지대에 위치하여 군사적 긴장감이 매우 높은 곳이었다. 왕요는 해당 지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동시에 촉군의 북벌에 대비하여 성곽을 정비하고 군수 물자를 관리하는 등 방어 체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왕요의 행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는 255년(정원 2년)에 발생한 적도 전투이다. 당시 촉한의 대장군 강유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위나라의 옹주를 침공했다. 위나라의 옹주자사 왕경이 조서에서 강유에게 참패하여 수만 명의 병사를 잃고 적도성으로 후퇴해 고립되자, 왕요는 등애 등과 함께 구원병을 조직하여 대응했다.
당시 농서태수였던 왕요는 정서장군 진태와 토구장군 등애의 지휘 아래 촉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작전에 참여했다. 기록에 따르면 등애는 왕요를 비롯한 현지 관리들과 협력하여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보급로 차단과 심리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조직적인 저항 덕분에 촉군은 식량 부족과 구원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했으며, 위나라는 관서 지역의 상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비록 왕요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위서 등애전 등에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으나, 그가 위나라 서부 방어선의 핵심 실무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급박한 전황 속에서도 태수로서의 직분을 다하며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장수들과 긴밀히 협조하여 국경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