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王莽, 45 BC – AD 23)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정치가이자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자한(子漢)의 재위 동안 실권을 쥐었던 인물이다. 왕망은 본래 전한의 신하로서 외척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고모가 전한의 황제인 유중의 아내였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후에 스스로 황위에 오르게 된다.
왕망은 AD 9년에 신나라(新나라)를 창건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면서 전한을 멸망시키고 중국의 정권을 잡았다. 그의 정권은 재정 개혁과 농민들의 생활 향상을 목표로 한 다양한 개혁 정책으로 특징지어졌으나, 이러한 정책들은 실제로는 농민들 사이에서 불만을 초래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왕망은 토지 개혁, 화폐 개혁 등 여러 경제 정책을 추진했으나, 이로 인해 불황과 기근이 발생했다. 또한 그가 본래 신나라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 법은 자주 변경되었고, 고위층과 귀족들 사이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왕망의 통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AD 23년에 발생한 농민 반란과 혼란 속에서 그의 정권은 붕괴되었다. 왕망은 반란군에 의해 패배하고 사망했으며, 이후 전한의 후계자들이 재대응하여 왕망의 지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왕망의 통치는 정치적 시도와 실패, 사회적 동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주로 그와 연결된 부정적 의미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