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치 요시나가(大内義長, 1463년 ~ 1563년)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로, 주로 현재의 야마구치현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오우치 가문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인 오우치 요시히로의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었다. 오우치 가문은 당시 서일본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이러한 가문의 정치적 및 군사적 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시나가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문화와 예술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교토에서 불교 사찰과 문화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여러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다도와 문학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우치 가문이 단순한 군사 세력이 아닌 문화적 중심지로서도 기능하는 데 기여했다. 요시나가는 또한 일본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들어오게 하여, 무역 관계를 확립하고 외국 문화의 유입을 촉진했다.
하지만 그의 통치에는 위기가 따랐다. 1551년, 요시나가는 전통적인 귀족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그의 사촌인 오우치 요시히로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 요시나가는 권력을 잃게 되었다. 이후 그는 전투에 교전히 이어진 분쟁 속에서 고립되었고, 결국 1563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은 오우치 가문의 몰락과 함께 일본 내에서의 권력 구조의 변화로 이어졌다.
요시나가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진취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동시에 내전과 정치적 음모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의 삶과 업적은 센고쿠 시대 일본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는 정치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후원자로도 평가받고 있으며,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