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음모

예비(豫備)와 음모(陰謀)는 특정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도로 실행의 착수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준비 행위를 의미한다. 음모는 2인 이상의 자 사이에서 특정한 범죄를 실행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며, 예비는 범죄의 실현을 목적으로 도구를 준비하거나 자금을 마련하는 등 외부적인 준비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형법상 범죄는 일반적으로 실행의 착수가 있어야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비와 음모는 그 자체로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특정 범죄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현행 형법은 예비·음모를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예외적 처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내심에 머물러 있거나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지 않은 단계에까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법률에 별도의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으며, 주로 살인, 강도, 방화, 내란, 외환의 죄와 같이 국가적·사회적 법익이나 중대한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들이 그 대상이다.

예비·음모는 '실행의 착수'가 있기 전 단계라는 점에서 미수(未遂)와 구별된다. 실행의 착수란 범죄 구성요건의 실현을 위한 직접적인 행위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시점을 기준으로 예비와 미수가 나뉜다. 판례에 따르면 단순히 범행을 모의하거나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예비에 해당하지만, 범행 대상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공격적인 행위를 개시하거나 법익 침해의 밀접한 위험이 있는 행위를 시작하면 실행의 착수로 인정되어 미수범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예비·음모 단계에서의 중지에 대해서는 학설상 논란이 존재한다. 범죄의 실행에 착수한 후 자발적으로 범행을 중지한 경우에는 '중지미수'로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규정이 있으나, 예비·음모 단계에서 자발적으로 중단한 경우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감면 규정이 없다. 다만 일부 판례와 학설은 법적 균형성을 고려하여 예비의 중지에도 중지미수의 규정을 유추 적용하거나, 자수한 경우에 한해 형을 감면하는 등의 방식으로 법적 구제를 검토하기도 한다.

예비·음모죄의 처벌은 중대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여 법익을 보호하려는 형사정책적 목적을 지닌다. 특히 테러나 조직범죄와 같이 실행 단계에 진입했을 때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국가가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처벌 범위가 무분별하게 확대될 경우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과 사생활이 위축될 수 있으므로, 법원은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나 실질적인 준비가 있었는지를 엄격히 따져 성립 여부를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