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呂布, 156년? ~ 199년)는 중국 후한 말기와 삼국 시대의 저명한 장수로, 뛰어난 무예와 전투 능력으로 유명하다. 그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불확실하지만, 주로 요동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여포는 원래 영제의 친척인 여관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청운의 꿈을 품고 무장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초기에는 동탁의 부하로 활동하며 그를 도와 tumultuous한 정치 상황 속에서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여포는 자신의 위상과 권력을 늘리고자 동탁을 배신하고 그의 목숨을 빼앗았고, 이후에는 동탁의 부하였던 강유(甘寧)와 함께 싸우게 된다. 동탁을 제거한 후, 여포는 여러 차례 반란과 배신을 통해 권력을 탐냈으며, 많은 영주들과의 동맹 및 갈등 속에서 삶을 영위했다.
여포의 군사적 능력은 뛰어나고, 싸움에서의 용맹함으로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었지만, 그의 성격은 잔인하고 배신이 잦아 신뢰를 얻지 못했다. 황건적의 난 이후 각지의 군웅들이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면서 여포도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감각 부족과 잦은 변심으로 인해 결국 그는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9년, 여포는 조조에게 패배해 잡히고, 결국 처형당하게 된다. 그의 사망은 후한 말기 혼란 속에서 더 큰 전쟁과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포는 역사와 전설 속에서 여러 번 언급되며, 특히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그의 전투력과 비극적인 생애가 많이 다뤄진다. 여포의 일생은 배신과 야망, 그리고 불굴의 전사로서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