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

양무(洋務)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청나라에서 추진된 일련의 개혁 운동을 의미한다. '양무'라는 용어는 '서양의 기술을 배우고 이를 통해 국력을 강화하자'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주로 외국의 군사적, 산업적 기술을 받아들여 청나라의 근대화를 도모하려는 시도로, 주요 목표는 국방력 강화와 경제 발전이었다.

양무 운동은 186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주로 '양무파'로 알려진 개혁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외국의 기술과 산업을 수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어, 조선공업, 군함 생산, 철도 건설 등의 산업을 발전시켰고, 외국에서 기술자를 고용하거나 유학을 보내 기술을 배웠다.

양무 운동의 상징적인 결과물로는 우한, 상하이, 톈진 등의 대도시에서 설립된 현대적 조선소, 기계공장 및 각종 학교들이 있다. 하지만 양무 운동은 성공적이지 못한 측면도 많았다. 제도의 개혁이나 정치적 변화는 불충분했으며, 외세의 압력과 내부의 반발로 인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붕괴됨에 따라 양무 운동의 목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양무는 중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는 중요한 시기였으나, 이 개혁 운동이 청나라를 구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양무는 청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최초의 노력 중 하나로 인식되며, 이후의 중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